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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싸움
수나라가 고구려 공격의 실패로 몰락하니 그 뒤를 당나라가 잇는다.
당나라 군대. 보잘 것 없는 군대의 대명사!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최강의 부대를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당 태종이 직접 몰고 고구려를 공격한 것입니다. 7세기는 이렇게 수와 당이 연달아 공격하는 고구려의 수난 시대였어요.
그러나 고구려는 안시성에서 당 태종마저 물리치지요.
대단한 고구려군의 기세를 보고 당 태종이 후퇴하며 큰 상을 안시성 성주에게 내렸다는 전설마저 내려오고 있답니다.
당나라가 전술을 변경합니다. 신라와 손잡고 나당 연합 결성.
결국 여기서 고구려는 무너지고 압니다.
고구려는 안시성에서 당의 침략을 격퇴하였다.
돌무지무덤
고구려의 무덤을 살펴보죠. 초기 고구려의 무덤은 돌을 잘라서 무지막지하게 쌓아 올리는 스타일이었답니다. 이걸 돌무지무덤이라고 해요. 대표적인 무덤의 형태로는 장군총이 있습니다. 돌 덩어리 한 변의 길이가 10m나 된다고 하죠. 아시아의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런 돌무지무덤이 백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 롯데월드 근처 석촌동 백제 고분에 돌무지무덤이 나타나요. 왜일까요? 그건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내려와 세운 나라가 백제이기 때문이죠. 무덤의 형태가 제일 보수적이거든요.
석초동 고분과 장군총을 통해 고구려와 백제가 돌무지무덤 형태로 고분을 축조함으로서 이들이 같은 계통임을 알려준다.
굴식 돌방무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구려와 백제는 초기 돌무지무덤 형태에서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뀝니다. 드디어 무덤 내부에 공간이 생겼고 이 공간에 벽화를 그려 넣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도교에서 중시하는 사신도가 그려졌어요.
그런데 이렇게 내부 공간을 만들다보니 입구가 필요했겠죠. 입구가 있다보니 도굴이 아주 쉬웠겠고요. 그래서 사실 남아있는 건 벽화밖에 없는 겁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돌무지무덤과 달리 내부에 공간이 있고, 입구를 만들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이제 고구려의 문화를 한번 살펴보죠.
고대 국가의 요소 중 하나가 불교의 수용이라고 했죠. 불교와 관련된 문화유산하면 불상과 불탑이 대표적이겠네요. 삼국시대에 남아있는 대표적 불상으로는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 있답니다. 연가 7년이라는 글자가 불상에 새겨져 있어 언제 만들어졌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삼국 시대 불상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
고구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도 그렇고,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 여래 삼존상도 그렇고, 처음 들어온 외국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한 장치, 아니었을까요?
중국을 통해 수용된 불교는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을 통해 전파, 확산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위 내용은 [최태성 KEYWORD 365 한국사]를 개인 공부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